구조화를 흐지부지 넘겼다가 석 달 뒤에 돌아온 일
첫 회기에 '그런 건 차차 얘기해요' 하고 넘긴 게 화근이었습니다.
내담자분이 너무 힘든 상태로 오셔서, 시간·비용·연락 방법·취소 규정 같은 얘기를 꺼내는 게 차갑게 느껴졌어요. 일단 이야기부터 듣자 싶었습니다. 선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제 불편함을 피한 거였어요.
그 뒤로 이런 일들이 생겼습니다.
- 회기가 매번 10분, 20분씩 길어졌다. 끝낼 타이밍을 못 잡았다
- 밤늦게 긴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고, 답을 안 하면 다음 회기에 서운해하셨다
- 당일 취소가 반복됐는데 규정을 말한 적이 없으니 꺼낼 수가 없었다
- 저는 점점 그 회기가 부담스러워졌고, 그 마음이 싫어서 더 잘해 드리려다 더 지쳤다
석 달째에 수퍼비전에서 '선생님이 지금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서야 인정했습니다.
늦게라도 다시 한 것
한 회기를 통째로 써서 구조를 다시 세웠어요. 제 잘못을 먼저 말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분명히 안내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우리 상담의 틀을 같이 정하고 싶어요.'
- 회기는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고 끝낸다
- 회기 사이 연락은 일정 변경 용도로만. 위급할 때 연락할 곳은 따로 안내
- 취소 규정
내담자분은 처음엔 '이제 저를 귀찮아하시는 거냐'고 하셨어요. 그 말을 피하지 않고 한 회기를 더 이야기했습니다. 그 뒤로 오히려 상담이 깊어졌어요. 틀이 있으니 그 안에서 더 안전하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구조화는 차가운 게 아니라 내담자를 지키는 울타리라는 걸 비싸게 배웠습니다. 비슷한 경험 있으신가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