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비전에서 크게 혼난 날, 집에 와서 축어록을 다시 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상담을 한 게 아니라 설득을 했네요.'
그 말을 듣고 20분쯤은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공개 사례 발표 자리였고, 동기 여덟 명이 같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뜨거워서 고개를 못 들었어요.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는 억울했습니다. 내담자가 자기를 너무 몰아세우길래 그렇지 않다고 말해 준 건데, 그게 왜 잘못인가 싶었어요. 수퍼바이저 선생님이 너무하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밤에 축어록을 다시 폈어요. 형광펜으로 제 말만 칠해 봤습니다. 내담자가 '제가 한심해요' 할 때마다 저는 '그렇지 않아요',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를 했더라고요. 일곱 번이었습니다. 그리고 내담자의 말은 회기 뒤로 갈수록 짧아졌어요.
제가 그 한심하다는 마음을 못 견뎌서 빨리 치워 버리려 한 것이었습니다. 내담자는 그 마음을 꺼내 놓을 자리를 잃었고요.
그 뒤로 하는 것
- 축어록에서 제 말만 따로 칠해 보기. 패턴이 한눈에 보입니다
- '그렇지 않아요'가 나오려 할 때 3초 멈추고 '한심하다는 게 어떤 건지 더 말해 줄래요'로 바꿔 보기
- 혼난 직후에는 결론 내리지 않기. 하루 지나면 들리는 게 달라집니다
- 다음 수퍼비전에서 '지난번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나요' 하고 다시 여쭤보기
다시 여쭸을 때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혼낸 게 아니라 중요해서 세게 말한 거다.' 아직 좀 무섭긴 한데, 그날이 제 수련에서 제일 많이 배운 날이긴 합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