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담자를 만나기 전날 밤, 질문지를 세 장 만들었습니다
그 질문지는 결국 한 장도 못 썼어요.
수련 첫 학기, 처음 배정받은 내담자를 만나기 전날이었습니다. 접수 면접 기록을 열 번쯤 읽고, 물어볼 질문을 세 장 적고, 교과서에서 첫 회기 구조화 문장을 베껴 외웠어요. 준비가 불안을 덮어 줄 줄 알았습니다.
당일, 내담자분이 앉자마자 '저 이런 데 처음이라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셨어요. 그 순간 알았습니다. 이 방에서 떨고 있는 사람이 저만이 아니라는 걸요.
외운 문장은 다 날아갔고, 제 입에서 나온 건 '저도 조금 긴장했어요. 천천히 해요'였습니다. 수퍼바이저 선생님께 혼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다만 덧붙이셨죠. '그 말이 내담자를 위한 말이었는지, 네 긴장을 덜려는 말이었는지는 구분해 봐라.' 아직도 그 질문을 가끔 꺼내 봅니다.
지금 돌아보면
- 질문 세 장보다 '오늘 여기 오기까지 어떠셨어요' 한 문장이 더 쓸모 있었습니다
- 첫 회기에 많은 걸 알아내려 할 필요가 없었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자리면 충분했습니다
- 50분 내내 제 머릿속은 '다음에 뭐라고 하지'였습니다. 그게 듣는 걸 방해했어요
- 끝나고 손이 떨려서 기록을 한 시간 뒤에 썼습니다
그분과는 12회기를 만났습니다. 종결 때 '첫날 선생님도 긴장했다고 해서 좀 편해졌어요'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어요.
지금 첫 내담자를 앞둔 선생님이 계시다면, 질문지는 한 장이면 됩니다. 진짜로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