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니 아침에 갈 데가 없더군요
34년을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는데, 이제는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올봄에 정년퇴직했습니다. 처음 두 달은 좋았어요. 늦잠도 자 보고, 평일 낮에 목욕탕도 가 보고. 그런데 여름 지나면서부터 아침이 길어졌습니다. 눈은 여전히 여섯 시면 떠지는데, 일어나서 할 일이 없어요.
집사람은 자기 생활이 있습니다. 수영 가고, 친구 만나고. 저는 거실에 앉아 뉴스를 틀어 놓고 있다가, 같은 뉴스가 세 번째 나오면 그제야 일어납니다. 누가 전화하는 일도 줄었어요. 명함이 없어지니 저를 찾는 사람도 같이 줄더군요.
한동안 그게 꽤 헛헛했습니다. 내가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싶어서요.
그러다 지난달에 동네 복지관에 서예 교실이 있다길래 등록했습니다. 화요일, 목요일 오전 열 시. 글씨는 형편없습니다. 옆자리 분이 제 '永' 자를 보고 한참 웃으셨어요. 그래도 화요일 아침에는 갈 데가 있다는 게 생각보다 큽니다. 옷을 골라 입고, 시간 맞춰 집을 나서는 것. 그게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끝나면 몇 분과 국밥을 먹는데, 다들 사정이 비슷합니다. 회사 얘기는 아무도 안 합니다. 무릎 얘기, 손주 얘기, 김장 얘기를 합니다.
저처럼 퇴직하고 아침이 길어진 분 계시면, 일주일에 두 번만이라도 시간 정해진 데를 하나 만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