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흐린 날, 기분도 같이 눅눅해요
해를 못 본 지 사흘째인데, 제 기분도 딱 그 하늘 색깔입니다.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회색이에요. 아침에 눈을 떠도 방이 어둑해서 몇 시인지 감이 안 오고, 그러니까 일어나기가 더 싫어요. 출근길에 우산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들고 나오면 안 오고, 두고 나오면 조금 뿌리고요.
예전엔 이럴 때 '나는 왜 이렇게 의욕이 없지' 하고 저를 탓했는데, 기분 기록을 몇 달 해 보니까 흐린 날에 점수가 낮은 날이 꽤 겹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물론 날씨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오늘 축 처지는 게 꼭 내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덜 억울해요.
그래서 흐린 날용 목록을 따로 만들어 봤어요.
흐린 날에는
- 아침에 방 불을 전부 켠다. 스탠드까지
- 점심은 따뜻한 국물로 먹는다
- 퇴근하고 큰일은 벌이지 않는다. 빨래도 내일
- 평소보다 30분 일찍 눕는다
- 기분이 낮아도 '날씨 탓 조금, 피곤 탓 조금'이라고 적어 둔다
효과가 있냐고 하면, 기분이 올라가진 않아요. 다만 더 내려가지는 않게 붙잡아 주는 정도예요. 저한텐 그 정도면 충분하더라고요.
오늘 점심은 회사 앞 칼국숫집에서 먹었어요. 김이 올라오는 그릇을 앞에 두고 있으니까 잠깐 괜찮았습니다. 창밖은 여전히 회색이었지만요.
기분 기록에 날씨를 같이 적기 시작한 건 석 달쯤 됐어요. 맑음, 흐림, 비, 이렇게 한 단어만요. 그걸 한 달 치 모아 놓고 보니 제 기분이 저 혼자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는 게 보였어요. 그걸 알고 나니 저를 덜 다그치게 됐고요.
일기예보를 보니 모레는 해가 난대요. 그날은 점심시간에 십 분이라도 밖에 서 있으려고요. 다들 흐린 날은 어떻게 지나가세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