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까 말까' 상자를 하나 만들었어요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이라, 버리기 전에 잠깐 넣어 두는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리할 때마다 같은 곳에서 멈춰요. 3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셔츠를 들고 '언젠가 입을지도', 고장 난 이어폰을 들고 '고치면 쓸 수 있는데', 다 쓴 다이어리를 들고 '이건 추억인데'. 그렇게 하나하나 고민하다 보면 한 시간에 물건 다섯 개를 판정하고 지쳐 버려요.
그래서 택배 상자 하나에 매직으로 '보류'라고 크게 썼어요. 규칙은 이렇습니다.
- 5초 안에 결정이 안 나면 고민하지 않고 상자에 넣는다
- 상자는 테이프로 닫고 날짜를 적어 현관 옆에 둔다
- 석 달 동안 한 번도 안 열어 봤으면 그때 다시 본다
이렇게 하니까 정리 속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버린다'가 아니라 '잠깐 넣어 둔다'니까 손이 가볍더라고요. 결정을 미루는 건데, 물건은 눈앞에서 사라지니 방은 정리가 되는 신기한 구조예요.
상자에 들어간 것들: 안 입는 셔츠 넷, 이어폰, 사은품으로 받은 머그컵 둘, 전 직장에서 받은 기념 볼펜 세트, 그리고 끝까지 망설인 곰 인형 하나.
곰 인형은 다시 꺼냈어요. 넣고 테이프를 붙이려는데 마음이 영 불편해서요. 그건 버릴 물건이 아니라 그냥 제 물건이었던 거죠. 그렇게 꺼내고 싶어지는 물건이 뭔지 알게 되는 것도 이 상자의 쓸모 같아요.
석 달 뒤에 상자를 열었을 때 제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또 못 버리고 석 달을 연장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지금 책상 위가 비어 있다는 건 꽤 기분 좋습니다.
다들 못 버리는 물건이 하나씩은 있죠? 저는 곰 인형이었네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