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길, 남의 집 창문 불빛 구경
저녁 아홉 시의 아파트 단지는 네모난 불빛이 가득한 큰 벽 같아요.
잠이 잘 안 와서 요즘 저녁 먹고 동네를 한 바퀴 걸어요. 30분쯤. 음악은 안 듣고 그냥 걸어요. 그러다 보니 남의 집 창문을 보게 됐어요. 들여다보는 건 아니고요, 멀리서 불빛 색깔만요.
집집마다 불 색이 달라요. 하얀 형광등 집, 노란 전구 집, TV 빛이 파랗게 깜빡이는 집. 3층 어느 집은 늘 주황색 스탠드 하나만 켜 놓아요. 저 집 사람은 책을 읽을까 뜨개질을 할까 혼자 상상해요.
베란다에 빨래가 널린 집, 화분이 줄 서 있는 집, 자전거가 세워진 집도 있어요. 1층 어느 집에선 매번 생선 굽는 냄새가 나요. 오늘은 어디선가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같은 마디에서 계속 틀리는데 그게 듣기 좋았어요.
단지를 벗어나면 작은 공원이 있어요. 가로등 밑으로 은행잎이 수북하고, 벤치엔 아무도 없어요. 공기에서 낙엽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나요. 10월 밤 냄새예요.
걷다 보면 좀 이상한 위로를 받아요. 저는 요즘 제 일만 유독 안 풀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저 불빛 하나하나마다 누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미루고, 내일을 걱정하고 있겠죠. 다들 각자의 네모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제 네모도 그렇게 특별히 못난 것 같지 않아요.
집에 돌아와서 저도 불을 켜요. 밖에서 보면 제 창문도 그중 하나겠죠. 밤에 걸으시는 분들, 뭐 보면서 걸으세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