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한 다음 날, 오전 반차의 맛
어젯밤 열한 시 반에 퇴근했고, 오늘은 오전 반차를 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못 냈을 거예요. 다들 같이 야근했는데 나만 쉬면 눈치가 보이니까요. 그런데 어제 택시 안에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문득, 내일 아홉 시에 앉아 있어 봤자 화면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리기 전에 결재를 올렸습니다.
오늘 아침 일곱 시에 눈이 떠졌어요. 몸은 출근 시간을 기억하더라고요. 다시 자려다가 그냥 일어났습니다.
반차 오전에 한 일
- 창문 열고 이불 털기
- 계란 두 개 넣은 라면 (아침부터, 죄책감 없이)
- 빨래 한 판 돌리고 널기
- 소파에서 30분 멍하니 있기
대단한 건 하나도 없는데, 평일 오전의 집이 이렇게 조용하고 환한 줄 몰랐어요. 햇빛이 거실 바닥에 네모나게 떨어지는 걸 한참 봤습니다. 그 자리에 늘 있었을 텐데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열두 시쯤 씻고 나가는데, 발걸음이 어제와 달랐어요. 일이 줄어든 건 아니에요. 오후에 가면 어제 못 끝낸 게 그대로 있겠죠. 그래도 네 시간을 저한테 먼저 쓰고 나니 '다시 해 보자' 하는 기운이 조금은 채워졌습니다.
야근 자체를 어쩔 수 없는 날은 있지만, 그다음 날을 어떻게 쓸지는 제가 고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반차, 생각보다 든든한 물건이네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