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노트 한 권을 처음으로 다 썼어요
뭘 끝까지 해 본 게 오랜만이라 자랑하러 왔습니다.
5월에 산 얇은 줄 노트예요. 48쪽짜리. 자기 전에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서너 줄씩 옮겨 적었어요. 매일은 아니고 생각날 때만요. 그래서 다섯 달이 걸렸습니다.
앞쪽을 다시 넘겨 보니 재밌어요. 5월의 글씨는 꾹꾹 눌러써서 뒷장에 자국이 배겼는데, 9월쯤부터는 힘이 좀 빠져 있어요. 그 무렵부터 잠을 조금 더 자기 시작했거든요. 글씨가 먼저 알고 있었네요.
고른 문장도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버티라는 문장, 이겨 내라는 문장을 많이 적었는데, 뒤로 갈수록 날씨나 음식 얘기가 늘었어요. 누가 국수를 삶는 장면 같은 거요. 왜 그런 문장에 손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을 때 마음이 편했습니다.
필사를 하면 좋은 점은 그 몇 분 동안은 제 생각 대신 남의 문장이 머릿속을 지나간다는 거예요. 자기 전에 늘 오늘 한 실수를 되감기 했는데, 펜을 잡고 있으면 그게 좀 뒤로 밀려나요.
글씨는 여전히 삐뚤삐뚤해요. 줄도 넘어가고요. 그래도 한 권이 찼습니다.
새 노트는 이번엔 모눈으로 샀어요. 내일부터 다시 첫 쪽입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