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셋, 정신과 의사인 제가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약 전화를 걸기까지 반년, 첫 회기에 입을 떼기까지 20분이 걸렸습니다.
계기는 사소했어요. 진료 중에 환자분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아무 감정이 안 드는 저를 봤습니다. 슬픈 이야기였는데 머릿속으로 다음 예약 시간을 계산하고 있더라고요. 그날 밤 잠이 안 왔습니다.
망설인 이유는 여러 가지였어요.
- 이 바닥이 좁아서 상담 선생님이 제 지인의 지인일 수 있다는 것
- '의사가 왜?'라는 시선. 사실은 제가 저에게 보내는 시선이었지만요
- 상대의 기법이 보일 것 같다는 오만함
결국 제 생활권과 떨어진 곳의, 접점이 없는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첫 회기에서 저는 제 상태를 증례 발표하듯 정리해서 말했어요. 선생님이 다 들으시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정리는 잘해 오셨는데,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대답을 못 했습니다. 15년 동안 남에게 묻던 질문인데요.
넉 달째입니다. 달라진 걸 과장하고 싶진 않아요. 여전히 지치고, 여전히 진료는 빠듯합니다. 다만 몇 가지는 분명해요.
- 내담자 의자가 얼마나 긴장되는 자리인지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 침묵을 견디는 쪽이 얼마나 힘든지도요
- 제 환자분들이 예약을 미루는 마음을 덜 서운하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 진료 중에 아무 감정이 안 드는 순간을 전보다 빨리 알아챕니다
받는다고 해서 약한 의사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적어도 저는 조금 덜 혼자가 됐습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