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못 한 날, 양치 하나로 버텼어요
오늘 제가 한 일은 양치가 전부예요. 그래도 적어 두려고요.
어제부터 몸이 물먹은 솜 같았어요. 알람은 들었는데 일어날 이유를 못 찾겠더라고요. 연차를 냈고, 커튼도 안 걷고 오후 세 시까지 누워 있었어요. 배는 고픈데 뭘 차릴 엄두가 안 났어요.
이런 날이 오면 예전엔 '해야 할 일 목록'을 떠올렸어요. 빨래, 장보기, 답장, 운동. 목록이 길수록 더 못 일어났고, 못 일어나는 제가 한심해서 더 가라앉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예전에 상담에서 정해 둔 걸 꺼냈어요. 바닥인 날의 목표는 딱 하나, 양치.
왜 양치냐면요,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야 하고, 화장실까지 걸어가야 하고, 거울 앞에 서야 하거든요. 3분이면 끝나고, 끝나면 입 안이 달라진 게 확실히 느껴져요. '뭔가 했다'는 증거가 몸에 남아요.
오늘도 그랬어요. 세 시에 겨우 일어나서 양치를 했고, 한 김에 세수도 했어요. 세수한 김에 물 한 컵 마셨고, 그러고 나니 식빵 한 장은 구울 수 있었어요. 거기까지였어요. 다시 누웠습니다.
대단한 반전은 없어요. 저녁인 지금도 기운은 없어요. 그래도 양치도 안 한 채로 밤을 맞는 것과는 달라요. 내일 아침의 제가 조금 덜 미워할 것 같아요.
다들 바닥인 날에 '이것만은 한다' 하는 거 있으세요? 모아 두고 싶어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