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간판을 읽으면서 동네 한 바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눈에 보이는 간판을 전부 소리 없이 읽으면서 걸었어요.
걷는 게 좋다는 건 아는데, 걸으면 생각이 따라와요. 오늘 못 한 일, 내일 해야 할 일, 몇 년 전에 한 실수까지. 그래서 산책하고 오면 더 지치는 날도 있었습니다.
상담 선생님께 그 얘기를 했더니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걸 하나씩 이름 붙여 보면 어때요?' 하셨어요. 그래서 제 식으로 바꿔 본 게 간판 읽기예요.
우리 동네에 이렇게 가게가 많은 줄 몰랐습니다.
- 세탁소 이름에 '백조'가 들어간다 (이유는 모름)
- 철물점 간판은 글씨가 반쯤 바랬는데 안은 환하다
- 분식집이 두 곳인데 둘 다 '원조'
- 2층 피아노 학원에서 같은 곡이 세 번 들렸다
- 과일 가게 앞 귤 상자에 손글씨로 '달아요'
간판을 읽는 동안에는 머릿속 말소리가 줄었어요. 글자를 읽는 자리와 걱정하는 자리가 같은 곳인지,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가 조용해지더라고요.
30분 걷고 돌아오니 평소처럼 지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과일 가게에서 귤을 한 봉지 사 왔습니다. '달아요'라는데 안 살 수가 없잖아요. 진짜 달았어요.
5년을 산 동네인데 오늘 처음 본 가게가 여섯 곳이었어요. 다음에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 보려고요. 걷기가 벌이 아니라 구경이 되니 할 만합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