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강아지랑 걷는 느린 산책
예전에는 얘가 저를 끌고 다녔는데, 요즘은 제가 기다려요.
우리 집 강아지는 올해 열네 살이에요. 작년까지만 해도 공원 한 바퀴는 거뜬했는데 올가을부터는 반 바퀴쯤에서 앉아 버립니다. 그러면 저도 옆 벤치에 앉아요.
처음에는 그게 속상했어요. 느려진 걸음을 보면 자꾸 앞날 생각이 나서요. 산책 내내 그 걱정만 하다가 집에 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수의사 선생님이 '나이 든 아이들은 걷는 것보다 냄새 맡는 게 산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는 거리를 포기하고 시간을 주기로 했어요. 전봇대 하나에 3분, 낙엽 더미에 5분. 얘가 코를 박고 있는 동안 저는 그냥 서 있습니다.
서 있다 보니 저도 보이는 게 생겼어요. 은행잎이 어느 쪽부터 노래지는지, 편의점 앞 화분이 언제 바뀌는지. 30분 동안 200미터쯤 가는 산책인데, 하루 중에 제 머릿속이 제일 느려지는 시간이에요.
벤치에 같이 앉아 있으면 얘가 제 발등에 턱을 올려요. 그 무게가 따뜻합니다.
언젠가의 일을 미리 당겨서 슬퍼하는 건 조금 줄이려고요. 오늘 저녁 산책은 오늘 저녁 산책이니까요. 방금 다녀왔는데 낙엽 냄새를 아주 꼼꼼히 맡았습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