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문을 세게 닫고 가셨던 분이 석 달 뒤 오셨습니다
다시 안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저도 그날 일을 잊으려 하고 있었고요.
서류 문제였어요. 원하시는 내용 그대로는 써 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렸고, 환자분은 '2년을 다녔는데 이것도 못 해 주냐'며 나가셨습니다. 문 닫히는 소리가 대기실까지 울렸어요.
그날 저녁 내내 제가 옳았다는 근거를 머릿속으로 정리했습니다. 정리할수록 더 불편해지더라고요. 내용은 옳았는데, 저는 그날 진료가 40분 밀려 있었고 말투가 딱딱했습니다. '안 됩니다'가 먼저 나갔고, 이유는 뒤에 붙었어요.
석 달 뒤 예약 명단에 그분 이름이 있었습니다. 들어오셔서 서로 3초쯤 말이 없었어요. 제가 먼저 말했습니다.
'다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제가 설명을 충분히 못 드렸습니다. 그 부분은 죄송합니다.'
환자분은 '저도 그날 좀 심했죠' 하셨고, 그 뒤 10분은 그 서류가 왜 그렇게 급했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몰리고 계셨더라고요. 그날은 들을 겨를이 없었던 이야기였어요.
서류는 이번에도 그대로는 못 써 드렸습니다. 대신 쓸 수 있는 범위를 같이 문장으로 만들었어요.
그 뒤로 달라진 것
- 거절해야 할 때는 '안 됩니다'보다 '어떤 상황이신지 먼저 듣겠습니다'로 시작합니다
- 진료가 밀린 날 어려운 대화가 걸리면, 다음 예약으로 넘기자고 솔직히 말합니다
- 화내고 가신 분 차트에 메모를 남겨 둡니다. '다음에 오시면 먼저 사과할 것'
관계가 한 번 깨졌다 붙으면 전보다 단단해진다는 말, 그제야 믿게 됐습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