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봉투 건네며 약사님이 하신 한마디
'이 약 드시는 분들 많아요. 잘 챙겨 드세요' 그 말에 고개를 못 들었어요.
병원 아래층 약국에 처음 간 날이었어요. 처방전을 내밀면서 이미 귀가 빨개져 있었어요. 약사님이 약 이름을 보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들을까,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거든요.
약사님은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설명해 주셨어요. 아침에 하나, 자기 전에 하나. 처음 며칠은 속이 좀 불편할 수 있으니 식사하고 드시라고. 궁금한 게 생기면 병원이나 약국에 전화해도 된다고요.
그리고 봉투를 건네면서 그 말을 하셨어요.
'이 약 드시는 분들 많아요.'
위로하려는 말투도 아니었어요. 그냥 날씨 얘기하듯이요. 그게 더 좋았어요. 제가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설명 없이 한 문장으로 알려 주신 거니까요.
약국을 나와서 건물 앞 은행나무 밑에 잠깐 서 있었어요. 잎이 끝에서부터 노래지고 있더라고요. 봉투를 가방 깊숙이 넣으려다가, 그냥 손에 들고 걸었습니다. 숨길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약이 저한테 맞을지는 아직 몰라요. 다음 진료 때 선생님이랑 이야기해 봐야죠. 그래도 첫날의 그 부끄러움은 약사님 덕분에 반쯤 내려놓고 왔어요.
이름도 모르는 약사님, 고맙습니다. 목소리 낮춰 주신 것까지 다 알고 있어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