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치 실험이 오늘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냉동고 문이 밤새 덜 닫혀 있었고, 그게 끝이었어요.
석사 3학기 대학원생입니다. 아침에 연구실 갔더니 샘플 넣어 둔 냉동고에서 삐 소리가 나고 있었어요. 문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열려 있었고, 안에 든 건 다 녹아 있었습니다. 3주 동안 모은 거였어요.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요. 솔직히 마지막에 연 사람이 저일 수도 있어요. 그 생각이 드니까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오늘의 감정 변화 기록
- 오전 9시: 멍함. 냉동고 앞에 5분 서 있었음
- 오전 10시: 교수님께 뭐라고 말씀드리나 대사를 열두 가지 버전으로 짬
- 오전 11시: 화장실에서 조금 울었음
- 오후 1시: 말씀드림. '다시 하면 되지, 문 알람부터 고치자'가 끝이었음
- 오후 2시: 허무함. 열두 가지 버전은 뭐였나
- 오후 6시: 선배가 떡볶이 사 줌. 자기는 석사 때 반년 치 날렸다고 함
선배 얘기 듣고 좀 웃었어요. 연구실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사고가 하나씩은 있다더라고요. 오늘은 제가 그 전설의 한 줄이 된 날이네요.
제일 무서웠던 건 실험이 날아간 게 아니라 '나는 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었어요. 그게 오전 내내 머릿속을 돌았거든요. 근데 냉동고 문 하나로 사람 전체를 판결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내일부터 다시 3주입니다. 떡볶이 힘으로 가 볼게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