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설거지를 해 두고 잔 아침
아침에 부엌에 나갔는데 싱크대가 비어 있었어요. 제가 해 놓은 거였습니다.
저는 설거지를 '내일의 나'에게 넘기는 데 선수예요. 저녁 먹고 나면 그릇을 물에 담가 두고 '이따가' 하는데, 그 이따가는 보통 다음 날 저녁이 되고, 그때는 그릇이 두 끼 치로 늘어 있어요. 그러면 더 하기 싫어져서 또 미루고요. 싱크대가 꽉 차서 컵이 없어 종이컵을 꺼낸 적도 있습니다.
어젯밤엔 이상하게 그냥 했어요. 딱히 결심한 것도 아니고, 물 마시러 갔다가 수세미를 잡았을 뿐인데 십 분 만에 끝나더라고요. 그릇 네 개, 냄비 하나, 수저. 그게 전부였는데 왜 그렇게 큰 산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빈 싱크대를 보는데 누가 저를 챙겨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 누가 어젯밤의 저라는 게 좀 웃기면서 뭉클했습니다. 깨끗한 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네요.
상담 선생님이 예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미루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 일을 시작할 때 드는 불편한 느낌을 피하려는 걸 수도 있다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설거지를 한다'가 아니라 '수세미를 잡는다'까지만 목표로 해요. 잡고 나면 대개는 하게 되더라고요. 안 하게 되는 날도 있지만요.
- 수세미 잡기
- 컵 하나만 씻기
- 더 할 수 있으면 더 하기
오늘 저녁에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반반이에요. 그래도 내일 아침의 저한테 빈 싱크대를 한 번 더 선물해 보고 싶긴 합니다.
'내일의 나'한테 뭘 해 주면 제일 고마울 것 같으세요?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