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마음은 듣는데, 집에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아빠는 환자 얘기는 잘 들어 주면서 내 얘기는 안 듣잖아' 했습니다.
지난 주말 저녁이었어요.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데, 저는 휴대폰으로 병원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건성으로 '응, 그랬구나' 했더니 저 말이 돌아왔어요.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변명거리는 많습니다. 하루 종일 수십 명의 이야기를 듣고 오면 집에서는 귀가 닫혀요. 말이 듣기 싫은 게 아니라 더 담을 자리가 없는 느낌입니다. 배우자가 고민을 얘기하면 저도 모르게 '그래서 결론이 뭔데'가 나가고요. 진료실에서는 절대 안 하는 말을요.
그런데 가족 입장에서는 그게 변명이 안 되죠. 제일 좋은 저를 밖에서 다 쓰고, 남은 찌꺼기만 집에 가져가고 있었던 겁니다.
요즘 해 보는 것
- 퇴근길에 차에서 5분 그냥 앉아 있다가 들어간다. 진료실 모드를 끄는 시간
- 집에 들어가면 30분은 휴대폰을 현관에 둔다
- 아이가 말할 때는 조언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다. 이게 제일 어렵다
- 주말 하루는 병원 전화를 직원 연락망으로 돌린다
- 배우자에게 '오늘은 내가 들을 힘이 없어, 내일 아침에 들을게'를 솔직히 말한다
다섯 번째를 말했을 때 배우자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차라리 낫다'고 하더라고요. 듣는 척하는 게 더 상처였다고.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어제는 먼저 와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걸로 조금 숨이 쉬어집니다.
같은 미안함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실 것 같아 적어 봅니다.
※ 운영팀이 만든 글이에요.